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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아바타2의 흥행기록을 보면서 그의 전작인 타이타닉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타이타닉도 당시 최고의 이슈메이커였으며 수많은 패러디와 천문학적인 흥행기록들을 양산하였다. 이렇듯 제임스 카메론감독은 영화산업에 있어서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구가하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각본/감독까지 모두 자기의 손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영화를 낼 때마다 사회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여겨지는 어비스(하지만 난 이 영화 무척 감동스럽게 봤다. 내게는 보석같은 영화다.)만 궤도를 달리할 뿐, 터미네이터, 에이리언2, 트루라이즈, 타이타닉, 아바타로 이어지는 그의 놀랄만한 행적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바타 시리즈가 아닌 또 다른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가 기대되는 이유다.

 

최근 아바타2 관련 기사를 보면서 타이타닉에 대한 추억에 잠깐 잠겼었다. 3시간이 훌쩍넘는 런닝타임이었지만, 내가 마치 타이타닉의 승객이 된 것처럼, 순간 순간 웃기도 하고, 땀에 손을 쥐기도 하고, 함께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리마스터 버전으로 극장에서 개봉을 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본다고 한다. 나도 당시에 긴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던 영화다. 타이타닉호가 실제로 침몰(1912년)한지 110년이 넘었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어서 영화를 보면서도 더욱더 감정몰입을 하게 된 것 같다.

 

실존 인물들은 아니지만, 타이타닉호의 운명과 함께 잭과 로즈의 슬픈 로맨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눈물짓게 만들었다. 나 역시도 잭이 꽁꽁 언 채로 바닷속으로 조용히 가라앉는 장면을 보면서 눈가에 눈물이 촉촉히 고였으니까. 이 장면까지만 이야기한다면 굳이 타이타닉 영화를 추억할 것은 없겠지만, 내가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추억하는 이유는 다른 장면에 있다.

 

잭이 마지막 이별을 예감하고, 로즈에게 이야기한다.

 

"You're going to get out of this. you're going to go on and you're going to make babies and watch them grow and you're going to die an old lady, warm in your bed. Not here. Not this night. Do you understand me?" (당신은 여기서 나갈 거야. 그리고 계속 살아갈 거야. 아기도 낳고, 그들이 자라는 걸 보고, 나이가 들어서 따뜻한 침대에서 눈을 감아야해. 여기는 아니야. 오늘 밤은 아니라고. 내 말 알겠어?)

 

잭과 로즈의 이별후 로즈는 잭의 유언대로 결혼해서 아이들도 낳고,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된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된 로즈가 과거를 회상하며 잠자리에 드는데, "My heart will go on" 의 조용한 연주음악과 함께 카메라가 로즈가 누운 침대옆의 사진들을 훑으면서 지나간다. 그 사진들 속의 젊은 로즈는 하나같이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들이다.. 비록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낳고,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고, 추억 속에서만 남은 그녀의 잭이지만 그를 향해 웃고 있는 것 같은 모습들. 거기에서의 로즈는 승마도 하고, 비행기 조종도 하고, 아프리카에 가서 원주민도 만나고, 인도에 가서 코끼리도 타고, 젊었을 때 로즈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을 하고 편안히 따뜻한 침대에 누운 로즈를 동시에 비추며 장면이 Fade out되면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간다.

 

이 몇초 안되는 장면을 보고는 아주 제대로 펑펑 울었었다. 영화가 끝나고는 옆방에 있는 부모님들이 혹시 들을까봐 이불을 덮어쓰고 엉엉 소리내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로즈의 그 사진들을 보면서 부모님의 젊었을 때 모습들, 당신들의 이루지 못했던 그 꿈들을 보는 듯했다. 그전까지만해도 내게는 아버지, 어머니가 항상 나의 부모님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번도 아버지, 어머니의 젊었을 때 모습을 생각한 적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빛 바래진 사진 속의 젊은 모습만 보았지, 지금의 나처럼 살아숨쉬는 이 젊음을 가진 그 모습, 그 꿈들을 직접 눈으로 본 적도 그 생각들을 나눈 적도 없었다..

 

분명 당신들에게도 눈부신 젊은 날들이 있었을테고, 해보고 싶었던 것들, 가보고 싶었던 곳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많았을텐데, 가정을 이루고 나를 포함한 우리 식구들때문에 어느 순간 희생을 하는 모습들, 나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지만,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는 이 못난 자식. "왜 내게 이렇게 해주지 않으셨어요?, 왜 그렇게밖에 못하셨어요?" 젊은 날 부모님에게 상처주는 말들, 당신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나자신의 모습들. 내 부모님이기전에 당신들도 한때는 나같은 아들과 딸이었을테고, 꿈많은 젊은이들이었을텐데.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혼란스럽게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내게는 작은 계기가 되었던 순간이었다.. 부모라는 위치때문에 참고, 희생하고, 자녀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지금 나의 모습처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부모님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몇년전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셨을 때, 내게 이백만원정도 부쳐달라고 하신 적이 있다. 병치료를 목적으로 무언가를 사려고 하셨던 모양이다.. 그걸 이야기하시면서도 아들한테 미안해서, 전화상으로 쭈뼛쭈뼛해하며 억지로 이야기꺼내시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에게 오히려 한없이 미안했다. 당시에 내게는 그 이백만원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가진 모든 걸 주더라도 당신이 건강하다면 다 드릴 생각이었다. 돈 걱정하지마시라고, 얼마 드릴까요라고 묻는데, 작은 목소리로 이백만원정도면 되겠다고 하시는데, 아버지에게 그러지 마시라고, 나한테 미안해 하지 마시라고, 몇번이나 말씀드린 기억도 난다.

 

지금의 어머니도 많이 나이가 드셨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얼굴에 깊에 패인 주름을 보면 안스러움과 함께 죄송한 마음만 든다. 내가 아무리 시간을 함께 하고 좋은 곳을 구경시키고 해드려도 내가 진 빚을 다 갚을 수는 없는 것 같다. 마음에 그 연민을 채울만한 만족이 없다. 그래서 맨날 어머니께 죄송하다. 당신은 항상 자신이 우리에게 해준 것이 너무 없어 미안하다고 하지만, 이제는 내가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어머니님의 젊음만큼은 되돌릴 수 없기에 한없이 미안하고 죄송하다.

 

육체의 젊음이 영원할 수 없듯이, 부모님들의 삶도, 시간도 나와 항상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걸 진작에 알지만, 그 마음만큼 행동이 따라주지 않은 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뒤늦게라도 부모님들의 그런 마음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나도 머지 않아 아버지가 될테고 나이가 들어 늙어갈테지만, 훗날 내 아이들도 내가 젊었을 때의 가졌던 꿈들과 삶의 열정을 발견하고 나를 더욱더 이해해주고, 함께 남은 인생들을 살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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